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난 후 우리는 물리적인 돈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닌 신체접촉이 필요없는 모바일 결제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의 중앙은행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발맞춰나가고있다. 바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줄여서 CBDC이다. 오늘은 이 CBDC가 주목받는 이유부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화폐는 왜 디지털로 진화하는가?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물리적인 돈을 손에 쥘 일이 줄어들었다. 편의점도, 택시도, 식당도 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기본으로 받는다. ‘현금 없는 사회’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된 것이다.
이 변화에 발맞춰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바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줄여서 CBDC다. 말 그대로, 정부나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공식 통화다.
이는 우리가 이미 사용하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나 암호화폐와는 다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국가가 보증하며, 모든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식 화폐의 새로운 형태다. 가장 큰 차이는 ‘누가 만들었는가’에 있다. 암호화폐가 민간 주도의 실험이라면, CBDC는 국가가 만든 디지털 돈이다.
왜 갑자기 세계는 CBDC에 주목하는가?
그 출발점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 현금 사용이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지갑보다는 휴대폰을 꺼낸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모바일 결제 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직접 디지털 화폐를 제공하면 현금 기반 경제에서 소외된 계층도 디지털 금융에 편입될 수 있다.
둘째, 국경을 넘는 결제는 여전히 느리고 비싸다. CBDC는 그 과정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 송금을 단 몇 초 만에 수수료 없이 보낼 수 있다면? 이는 개발도상국, 노동이주자, 소상공인에게 매우 큰 변화다.
셋째, 민간 암호화폐의 확산은 국가에게 도전이 되고 있다. 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특정 기업이 만든 코인을 화폐처럼 쓰기 시작한다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조절하거나 통화를 조정할 힘을 잃게 된다. 이는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 큰 제약이 된다.
이처럼, CBDC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자, 금융 포용을 넓히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각국은 어떤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나?
이미 몇몇 국가는 CBDC를 실험 단계 이상으로 진전시켰다.
중국은 가장 앞선 사례다. ‘디지털 위안화’라는 이름으로 수년째 실험을 진행 중이며,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에서 일상 생활에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QR코드 결제, 공공요금 납부, 교통비 지불까지 가능하다. 특히 인터넷이 끊겨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까지 적용돼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디지털 유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출시되진 않았지만 이미 시범 모델이 마련됐고, 조만간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일부 상점에서 제한적으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초로 ‘e나이라’를 공식 발행했다. 저소득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이 디지털 화폐는, 점차 모바일 송금과 정부 보조금 지급에도 활용되고 있다.
브라질도 ‘드렉스(Drex)’라는 이름으로 CBDC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서, 정부 보조금이나 소상공인 대출 자동화를 염두에 둔 기술 설계를 진행 중이다.
이 변화는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우리가 사용하는 돈의 형태가 바뀌면, 삶의 많은 부분도 바뀐다.
CBDC가 보편화되면 가장 먼저 달라질 것은 현금 없는 사회의 가속화다. 노점상, 택시기사, 동네 병원까지도 디지털로 돈을 주고받는 시대가 도래한다. QR코드나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CBDC는 기술적으로 정부가 모든 거래를 실시간으로 추적 가능하게 만든다. 누가, 어디서, 무엇에, 얼마를 썼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 예방이나 탈세 방지엔 도움이 되지만, 개인의 소비 패턴이나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은행의 역할 변화다. 만약 모든 국민이 중앙은행에서 직접 디지털 지갑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시중은행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출, 저축, 이자 정책 등이 달라지고, 중소 은행의 생존도 위협받을 수 있다.
국가 간 무역에도 변화가 생긴다. 예컨대, 중국과 러시아가 CBDC 기반 결제 시스템을 만들 경우, 미국 달러의 국제 결제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 이는 국제 금융 질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중대한 흐름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행도 디지털 원화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몇 차례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했고, 금융기관과 함께 실제 거래 시뮬레이션을 마친 상태다. 아직 정식 도입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점진적 도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한국은 전자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CBDC 도입에 대한 기술적 장벽이 낮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문제, 은행과의 역할 분담, 제도적 정비 등은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지금 돈의 형태가 변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전에서 지폐로, 다시 카드에서 모바일로, 그리고 이제는 국가가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이 변화는 조용하지만 깊고 넓게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CBDC는 분명 많은 편의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 뒤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통제, 감시, 독점의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누가 통화를 발행하느냐’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경제를, 금융을, 나의 지갑을 지배하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CBDC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두고 벌어지는 국가 간, 세대 간, 철학 간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